박항서와 축구외교

박항서, 동남아의 축구한류로 번지다

입력시간 : 2019-01-12 09:50:30 , 최종수정 : 2019-01-12 10:01:09, 최윤희 기자
아시안컵 출전을 위해 기자회견을 하는 박항서 감독 사진제공:노컷뉴스

박항서와 축구외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의미의 존재는 엄연히 현재 진행형이다. 국내 일개 내셔날리그의 감독이었던 축구지도자가 일으키고 있는 기적 같은 소식이 연일 아시아 축구계에 화두로 뜨거운 것이다.

 

201710,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후, 20188월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준결승에 오르게 하더니, 몇 개월 뒤엔 10년 만에 AFP 스즈키컵의 우승을 베트남에 안겨줬다. 자동적으로 2018년 베트남의 국제축구연맹 랭킹도 121위에서 100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베트남 국영TV도 박 감독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 여세를 몰아 20191월 아시안컵 본선에 올라 중동의 강적들과 혈투를 벌일 기세다. 비록 1차전에서 강호 이라크에 2-3 역전패를 당했으나, 일부 전문가의 작전실패 지적에도 베트남 현지의 분위기는 박항서 호의 고 고 를 계속 외치고 있다.

 

베트남의 여행업계는 덩달아 박항서 특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파급효과는 산업전반에 전방위적이다. 전기,통신,전자,식품,화장품 등 한국산 제품들도 매출 신장세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한 마디로 베트남에서는 한류열풍에 이어 또 하나의 한국열풍과 박항서의 축구돌풍이 최대의 이슈 메이커로 인도차이나반도의 극동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중이다.

 

박 감독은 1983년 한국 프로축구 수퍼리그출범 이듬해인 1984년 명문 럭키금성구단의 주 멤버로 참여해 한국프로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토종선수출신이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그는 축구를 위해 호적 나이도 2살 젊게 고쳤다 한다. 한국축구 주류 엘리트의 산실 K, Y대 출신이 아니었던 덕분(?)에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의 히딩크와 한 배를 타는 행운을 얻는다.

 

명장 히딩크의 밑에서 수석코치를 담당하며 익힌 선진축구의 모습은 일찍이 한국에서 볼 수 없던 훈련방식이었으며, 형님, 아우식 한국형 리다쉽이 아닌 축구 본래의 선수적 자질을 냉정히 평가하고, 고도의 과학적인 체력훈련과 팀웤을 다지는데 보조역할을 담당했다. 히딩크가 혹독한 아버지였다면 박항서 감독은 온화한 어머니였다. 한일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 황선홍이 벤치에 있던 히딩크보다 박항서 감독에게 먼저 달려가 안긴 장면은 두고두고 축구계에 회자되는 장면이었다.


히딩크가 물러간 뒤 공석중인 대표팀 감독을 맡아 박 감독은 2002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처음으로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내노라는 한국 최고의 스타감독들의 무덤이었던 대표팀 감독자리는 그에게도 시련을 가져왔다. 아시안게임 4강탈락 이라는 수모는 3개월 만에 감독직 사퇴로 이어졌다. 이후 프로리그의 여러 팀들을 전전(포항경남전남상주)하며 축협과의 마찰성 기자회견에다가, 소속 프로팀 일부 선수들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내리막을 걷더니 내셔널리그의 창원시청팀에서 그의 마지막 축구인생처럼 불태우며 절치부심하는 사이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처음부터 우리와 친근한 쌀문화와 친한류의 정서적 환경이 잘 어울리는 베트남이 그에게는 적소였을까. 토종축구로 다져진 그에게 멀리 바다 건너에서 아른거리듯 다가온 성공의 밧줄을 힘껏 당긴 것이다. 한국의 맨땅에서 축구를 시작했던 그였던 만큼 베트남은 지도자로서도 맨땅 같은 곳. 오히려 낯선 곳에서 축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유스런 환경은 선수들과 팀웍을 조율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권위적이지 않은 희생적 리더쉽에도 베트남 선수들이 녹아들었다. 그 하나의 리더쉽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외교적으로 특별한 관계에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지만 교역규모는 날로 성장세이다. 베트남 청년들의 취업선호도 한국기업이 단연 제일 선순위다. 현재 베트남은 한국이 제2위의 교역국이며, 베트남은 한국의 제3위 수출국이다. 몇 년 전부터 과거 월남전쟁 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문제가 한편으로는 양국 우호문제에 걸림돌이기도 하였으나,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의 상호 이해와 교류확대로,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선린의 우호적 관계의 증진이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어떻든 박항서의 축구외교는 역사적 외교적 양국 간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결정적 계기를 주었다. 최근에는 한국정부가 베트남 3대도시 거주자의 한국방문 시 5년의 복수비자 발급을 허용하는 발표로 베트남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한국열품을 가속화하고 있다. 1001000명의 외교관으로도 못해내는 일이 여기에 있다. 한 스포츠 선수나 지도자가 외국에서 이룩해 낸 업적이 얼마나 외교적 성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일대 혁명적 외교마술에 한국과 베트남이 푹 빠져 있는 것이다.


부디 그의 계속된 건승을 염원해 본다.

 

 

최윤희 기자 smrul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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